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돌프 히틀러/평가 (문단 편집) ==== 1940년의 '[[낫질 작전]]' ==== '낫질 작전'은 벨기에로 진격하는 독일군에 전력을 쏟지 않고 그 대신에 주력이라고 할 수 있던 기갑부대를 당시에 전차가 기동할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아르덴 고원지대로 보내서 고속으로 돌파하게 한 후, 벨기에로 공격해 오리라 생각되던 독일군에 대비하고 있을 프랑스군의 후방을 공격하여 프랑스군의 주력을 포위해 버린다는 내용의 작전이었다. 다시 말해서 참신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도박에 가까울 정도로 무모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에리히 폰 만슈타인|만슈타인]]이 이러한 작전안을 건의하자, 당시 참모장이었던 할더가 이끄는 독일 육군 최고 사령부는 끝까지 반대하였고 오히려 만슈타인을 새로 창설된 후방의 제38군단장으로 사실상 좌천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만슈타인에게 38군단을 방문한 히틀러와 독대할 기회를 얻게 되는 큰 행운이 되었다. 당시 히틀러는 독일 총 참모본부가 제시하였던 황색 작전 계획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슈타인이 제안한 낫질 작전을 직접 듣고는 바로 허가하였고, 곧 총통의 지시로 낫질 작전이 준비에 들어갔다. 이 작전이 실행되면서 프랑스 육군은 전력이 양분되었고 결국 프랑스에 주둔 중이던 영국군과 같이 됭케르크라는 해안 도시까지 밀리게 된다. 하지만 독일군의 진격 속도가 너무나도 빠른 상태였고, 또 괴링의 요청이 있었기에 히틀러는 됭케르크에 몰려 있는 프랑스 및 영국 병력은 일단 제쳐두고 프랑스 점령 및 확보에 주력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됭게르크에 모여 있던 병력은 34만 명이 넘었지만 사실상 고립되어 공세를 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히틀러가 됭게르크 공격을 명령했다면 거기에 시간을 빼앗기는 동안 프랑스가 대비할 기회만 주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됭케르크의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결국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주력의 대부분을 잃은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하게 된다. 당시에 참모장이었던 할더를 비롯한 육군 수뇌부들은 1차대전 때의 슐리펜 계획과 거의 다름이 없는 황색 작전을 계획하였는데[* 물론 여기서 함정은 프란츠 할더는 히틀러에게 영국과 프랑스가 가짜전쟁으로 별 전쟁수행 의지도 없으니 협상테이블로 가라고 강권했고 그런면에서 성공가능성이 전혀 없는 황색작전안을 만들어 히틀러의 프랑스 침공의지를 포기하려 했다.] 히틀러의 '''과감한 결단'''으로 인하여 그런 진부한 계획은 취소 되고 참신한 방법의 침공 계획이 수립되었던 것. 이때 만약에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은 묻혔을 것이고 원래의 황색 작전이 시행되었을 텐데, 그리 되었다면 과거 1차대전 때와 같이 끝없는 대치전이 이루어져 결국 그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패전을 되풀이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히틀러의 이러한 결정으로 독일이 4년간 서부전선에서 질질 끌다가 결국 패전한 1차대전과는 달리 2차대전에서는 불과 6주 만에 서부전선을 정리하게 되는 엄청난 성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 결정은 2차 대전에서의 가장 중요했던 결정들 중에 하나였다고 볼 수 있는데 독일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서부전선을 정리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승리에서 얻은 결과물들은 어마어마해서 그러한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독일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결국 소련을 공격할 야심을 실행에 옮길 자신을 얻게 되었다. 사실상 '''2차 대전의 진행 방향을 가장 크게 바꾸어 버렸던 결정이었다.''' 한마디로 '''이게 아니었으면 나치 독일은 1차 대전 시즌2 찍고 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